개방형 플랫폼으로 인해 강성하였던 로마가 급격히 쇠약해지고 멸망하게 된 이유로는 흔히 게르만 민족의 침입 또는 기독교의 도입이 주 원인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본 칼럼에서는 외부적인 요인이 아니라 로마 내부에서 시행된 2가지 정책의 실패를 근본적인 이유로 제시하고자 한다. 이 2가지 정책 모두 앞 장에서 설명한 군사 제도와 시민권 부여 정책을 나름 개선해 보고자 하다가 오히려 대 실패의 결과를 낳게 된 것이며, 또한 둘 다 한 가족인 아버지와 아들의 합작품이라는 공통점이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첫째, 일반 서민과 괴리된 전문 군사 집단의 탄생이 로마의 멸망이 시작된 원인이다.

서기 192년,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글래디에이터’에도 나오는 유명한 폭군 코모두스가 측근에게 암살된다. 현제(賢帝)로 알려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황제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는 두드러지게 특이한 결함을 나타내지 않았지만, 마치 조선의 폭군 연산군처럼 황제 자리에 오른 이후 갖은 향락과 폭정을 거듭한 끝에 종말을 맞이한 것이다. 코모두스의 사후 황제 자리를 노린 각 속주 총독들 사이에 치열한 내전의 혼란이 일어나는데, 이 내전을 정리한 사람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였다. 그는 로마가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후 그 지역(북아프리카)로 이주해 온 로마 시민의 후손이라고 알려진다.

세베루스는 북아프리카의 고향을 떠나 본국의 수도 로마로 유학을 떠났는데, 당시 인재 육성에 열중하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눈에 띄어 30세에 원로원 의원이 되는 등 순조로운 출세를 거듭했다. 세베루스는 코모두스의 암살 당시 속주 총독으로 3개 군단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권력 투쟁의 혼란 속에서 마침 아무도 확실한 경쟁자가 없을 때 알맞은 타이밍에 자신의 군사들을 이끌고 로마 입성에 성공하여 황제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세베루스는 이전의 로마 황제들과는 다르게 혈통이나 후계 지명을 거친 정통성을 가진 황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군대의 지지가 필요하였고, 다른 잠재적 경쟁자들(휘하 군단을 보유한 타 속주 총독들) 과의 차별화를 부각시키기 위해 그때까지 의무 징병제였던 로마 군대를 지원제로 바꾸고, 봉급을 대폭 인상시켜 주며, 군단병도 정식 결혼을 허용해 주는 조치를 단행했다. (서기 197년경) 그 이전까지는 로마 군단병은 전투에 전념하게 하기 위해 정식 결혼이 허용되지 않고 일종의 동거 형태만 비공식적으로 용인하였다. 그러나, 세베루스의 이런 조치로 인해 군대 생활이 너무 편해지게 되자 국가의 권력은 일반 시민으로부터 군대로 완전히 이동하게 되었고, 로마는 민간인이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군대 집단이 통치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한 마디로 군대의 지지를 얻기 위해 군대를 일종의 특권 계급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변질된 로마군은 더 이상 국가 전체와 공공의 이익을 생각하는 충실한 하부 실행 조직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익 향상만을 추구하는 특정 이익 집단으로서의 지위 강화에만 더욱 몰두하게 된다.

둘째, 로마 시민권을 전 제국의 평민에게 일괄 부여하고, 시민의 세금을 2배로 인상한 것이 로마 멸망을 가속화시켰다. 

세베루스 황제가 노환으로 별세한 후, 황제 자리를 물려받은 사람은 그의 아들 카라칼라 (Caracalla, 이는 사실 별명이었으며 그의 정식 명칭은 세베루스 안토니누스 Severus Antoninus 임) 였는데, 그는 단독 황제에 등극한 지 1년 정도 지나자 (212년) 충격적인 칙령을 발표한다. 그것은 바로 안토니니아나 칙령 (Constitutio Antoniniana, 안토니누스의 칙령이라는 뜻) 이었다.

그는 이 칙령에서 규정하기를 속주민과 로마 시민의 구별을 철폐하고 기존 로마 시민 인구의 9배 가량 되는 모든 속주민은 로마 시민과 동등한 지위를 갖도록 하였고, 로마 시민의 세금을 기존의 연 수입 5% 에서 10% 로 2배 인상하였다. 카라칼라의 의도는 나름대로는 인도적이고 (속주민도 로마 시민으로 확대) 국가 재정 건전성을 확충하고자 하는 것 (시민의 세금 2배 인상) 이었으나, 이로 인해 그는 아버지 세베루스와 마찬가지로 로마 제국 멸망의 씨앗을 뿌린 결과를 가져왔다. 즉, 기존의 로마 시민권자는 긍지와 자부심을 잃어버렸고, 기존의 속주민은 자동으로 로마 시민이 되어버렸으므로 군대에 지원 입대하는 등 열심히 사회에 기여하고 노력해서 로마 시민이 되고 싶어하는 의욕이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속주세가 전면 철폐되자 확 줄어든 재정을 메우기 위한 대책으로 로마 사회 전반에 걸쳐 각종 임시세가 신설되어 탈세와 도덕적 해이를 부추겼다. 이 결과 오히려 사회 유동성이 경직되고, 가진 자와 없는 자 간의 양극화가 가속화되고, 군대 유지 비용이 치솟아 로마 제국 전체의 재정 건전성을 급속히 악화시키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최초에는 좋은 의도에서 군역과 조세 제도의 현황을 개선하자고 시도한 변화가 의도치 않게 군대 - 민간인, 본국 - 속주민 간의 유동성과 상호 교류를 차단하는 폐쇄형 사회구조를 야기시켰고, 이것이 결국 강대한 로마 제국의 멸망을 불러왔다는 것은 후세에 전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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