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과 경제의 타임머신 – 못다한 이야기 (Director’s Cut) #63] 오다 노부나가의 전략과 경제 – 세계 최초로 전문 총포부대의 3단 일제사격 도입
오다 노부나가 (織田 信長)는 이미 앞에서 이미 수 차례 언급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야마우치 카즈토요의 주군으로, 후일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 家康)가 일본 통일을 할 수 있도록 한 모든 전략과 경제의 기초를 제시하고 만들어 보여준 천재 전략가이다. 노부나가의 리더십과 전략에 대한 내용만으로도 책 몇 권이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일화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그가 창시한 전략과 경제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나가시노 (長篠) 전투에 대해서만 간략히 소개하기로 한다.
1575년 6월, 당시 오다 노부나가의 일본 통일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은 일본 가이 (甲斐) 지역에 웅거한 다케다 (武田) 가문이었다. 그들은 서쪽의 오다 가문과 동쪽의 다케다 가문으로 나뉘어 일본의 한복판을 양분하고 있었고, 오다 입장에서 천황이 위치한 서쪽 교토 방면을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다의 배후에 자리한 다케다를 넘어설 필요가 있었다.
▲ 일본 전국시대의 다이묘 세력도(출처 : blog.naver.com/nonkitov)
1573년, 당시 다케다 가문을 휘어잡고 통솔하던 뛰어난 전략가였던 다케다 신겐(武田 信玄)이 갑자기 죽자, 그의 아들로 가문을 이어받은 30세의 젊은 영주인 다케다 가쓰요리(武田 勝頼)는 기라성 같던 아버지 휘하의 맹장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 뭔가 빨리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아버지의 사후 2년 가량이 경과한 1575년, 중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가시노 지역의 시타라가하라(設楽ヶ原)라는 평원에서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에 맞서 대회전을 치르기로 결정한다.
이때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합군의 총 병력은 3만 5천명, 다케다 군의 병력은 1만 5천명 가량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오다·도쿠가와 군의 병력이 압도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다케다군의 자랑이자 강점은 이중에 전문 기마대(騎馬隊) 3천 기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 당시 3천기의 전문 기마대는 말이 귀한 일본 내에서는 단연 최강, 최대의 병력이었으며, 기마 1기는 일반 보병 1명보다 녹봉이나 전투력 공히 약 6배의 수준으로 알려지고 있다. 평소에 말을 키우고, 관리하고, 전투에 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비용과 시간이 드는 것이었다. 당시의 기마대는 마치 오늘날의 전차 부대와 같은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다케다 가문의 전투병력이 1만 5천명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전투력은 보병 1만 2천명 + 1만 8천명분의 전투력(기마대 3천 기 x 보병의 6배 전투력)을 더해 총 3만명 분의 전투력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오다·도쿠가와군의 3만 5천명도 이에 비해 결코 압도적으로 많다고 할 수 없는 병력이었다. 하물며 적진을 순식간에 파고들어 수뇌부를 곧바로 타격하거나, 금세 우회하여 적의 배후나 측면을 찌를 수 있는 기마대의 속도나 위력을 감안한다면 도리어 다소 병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것이 다케다 군의 위력이었던 것이다.
다케다 군에 과감히 맞선 오다 노부나가는 이 정도의 계산을 하지 못했을까? 그렇지 않다. 노부나가는 철저히 실리적이고 계산적인 무장이었다. 조금이라도 필승의 확신이 없다면 결전을 미루고 다음 기회를 보는 것이 노부나가의 습성이었다. 실제로 이렇게 막강한 다케다의 기마대에 대비하여 노부나가는 그때까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비장의 전략을 수립하여 전장에 임하였던 것이다. 그 비밀 전략은 바로 세계 최초로 총만 쏘는 전문 총포 부대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노부나가는 다케다 기마부대의 강점은 바로 넓은 평원에서 일제 돌격하여 적진을 쓸어버리는 전략에 있으므로 평원으로 기마대를 유인해서 싸우되, 전투 개시 직전에 말막이 3단 목책을 세우고 그 뒤에서 3천명의 총부대가 1천명씩 교대로 3단 사격을 쉼 없이 되풀이한다면 설사 3천 기마대가 동시에 덤벼들더라도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으로 계산하였다. 이를 위해 노부나가는 사전에 비밀리에 훈련과 연습을 거듭하여 3단 교대 일제 사격이 끊임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또한 최종 전투 개시 전까지 철저히 3천정 보유의 비밀을 유지하고자 오다 군이 보유한 총을 일반 화물에 섞어서 감추게 하여 부대를 이동시켰고, 총이 1천정 가량 준비되었다는 정보를 적진에 흘려 보냈다.
반대로 다케다 군 입장에서는 당시 일본의 총은 한번 발사한 후 다시 화약과 총알을 장전하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1천 정의 일제 사격이라면 한번 정도는 감수하더라도 그 다음에 총을 발사하기 전까지 충분히 적진에 도달하여 기마대로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특히 비 오고 습기 찬 아침 시간을 노려 공격한다면 화약의 위력은 반감될 것이라는 당시의 상식을 굳게 믿었는데, 이 또한 노부나가는 이미 계산에 넣고 있었고 오다 군 내부에서는 비나 습기에 관계없는 최적의 사격 노하우가 수립되어 이미 총 부대 전체가 이에 숙달되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서로가 필승을 꿈꾼 채로 아침 나절부터 시작된 나가시노 전투는 결국 오후까지 이어져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의 대승으로 끝났다. 다케다 군은 최초 1만5천명 중 약 1만여명의 전사자를 내었으며, 믿었던 3천기의 기마대는 3천 총포대의 3단 일제 사격에 휘말려 오다 군의 말막이 목책 근처에서 거의 전멸하고 말았다. 오다·도쿠가와 연합군 역시 6천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지만, 오다 측의 희생자는 거의 이름없는 하급 졸병이었던 것에 비해, 다케다 측은 기마무사 등을 비롯한 상급 무사들 대부분이 총포대에 의해 맥도 못 추고 비참하게 죽어가는 아군의 상황에 격분하여 다같이 일제 돌격을 실시하다가 죽어가게 되어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이었다. 다케다 가문은 이후 오다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7년 가량을 더 버텼지만, 이미 더 이상 오다 군에 정면으로 맞설 상황은 아니었고 험준한 가이 지역의 산악 지형에 의존하여 간신히 수비전에만 급급하다가 결국 1582년 오다 군의 일제 정벌로 인해 패망에 이르게 된다.
▲ 나가시노 전투 상상도(출처 : www.historum.com)
오다 노부나가는 이 승리로 인해 일본의 노른자인 중부 지역의 패권을 차지함과 동시에 의도치 않게 일본 내 경제 · 사회적 구조의 급격한 변화도 가져오게 된다. 나가시노 전투 이전까지는 무사 계층들은 오랜 기간의 훈련을 거쳐 기마 무사로서의 승마술 및 개인의 창검술을 갈고 다듬어야 했고, 영주들은 이런 중간 무사 계층들의 눈치를 보며 이들을 잘 육성하고 관리하였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 승리 이후 기마 무사대는 일종의 호화로운 장식이나 전령 등의 역할만 맡게 되었고, 실제 전투의 승리를 위해서는 단기간에 총포대를 많이 양성하는 것이 최고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오랜 기간에 걸친 전문 무사의 양성이 의미가 없어지고, 몇 개월 정도만 사격술을 익히면 되는 총포대가 실전에서 더욱 중요시된 것이었다. 또한 단기간에 총포대를 양성하기 위해서 철광석 광산업 및 상공업 산업 육성이 갑자기 가장 중요하게 되었고, 이는 중간 무사 계층의 쇠퇴를 가져오게 되며 더더욱 최고 영주의 권한과 책임이 막중해지는 구조 변혁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던 것이다.
[본 기사나 책에 대한 질문 및 의견은 bookdoo@gmail.com 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